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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8월 11일, 잠자던 중 전 남자친구에 의해 성폭력을 당한 사건의 피해자가 증인신문을 앞두고 있다. 2022년 1월에 발생한 본 사건에서 피해자는 잠이 들어 의식이 없는 사이 강간과 불법촬영 피해를 입었고, 이에 가해자를 준강간치상과 카메라 등 이용촬영으로 고소하였다. 그러나 8월, 검찰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연인관계였기 때문에 강제적 성관계가 가정적으로 승낙될 수 있다’, ‘부부·연인관계에서 상대방이 자고 있을 때 성관계를 한다고 해서 곧바로 준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불기소 처분했다. 피해자는 ‘연인관계라는 이유만으로 자고 있을 때의 일방적 성관계에 대한 가정적 승낙이 있다는 판례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이런 법리를 검찰의 공식적인 성(性)인식인 것처럼 공표하는 것은 너무나 부적절하다’며 즉각 재정신청을 하였고, 올해 4월 서울고등법원은 재정신청 인용 결정을 내렸다. 당연한 사법적 판단을 받기까지 피해자가 겪었을 고통과, 이를 야기한 검찰의 처참한 인식 수준에 분노를 감출 수가 없다.

 

현행법상 ‘준강간’은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 또는 추행’함이라 명시되어 있고, 이외에 다른 요건을 규정하거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을 제한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검찰의 불기소 처분 이유대로라면 가해자와 친밀한 관계에 있거나, 있었던 사람은 ‘강간 피해자’에 포함될 수 없다는 것이다. 법률뿐 아니라 2013년 이미 판례로도 아내강간이 인정된 바 있음에도, 이 무슨 해괴한 논리인가. 여성가족부의 2022년 성폭력 안전실태조사 연구에 따르면, ‘연인관계에서의 스킨십은 상대방에게 동의를 묻지 않아도 된다’는 항목에 응답자의 74.3%가 ‘그렇지 않다’라고 답하였고, ‘부부 사이라도 강제로 성관계를 할 경우, 강간죄에 해당된다’라는 항목에 응답자의 70.4%가 ‘안다’라고 답하였다. 가해자와 과거 또는 현재 부부·연인관계라 할지라도 동의 없는 성적 행위는 성폭력이라는 것은 국민 누구나가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러나 검찰은 법리에도, 상식에도 어긋나는 처분을 내림으로써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통념을 확산하고 있다.

 

경찰이 발표한 데이트폭력 사건 통계에 따르면, 2023년 5월 데이트폭력 범죄 유형 중 성폭력 검거 인원은 전년도 동월보다 78.2% 증가하였다. 이처럼 연인 관계에서의 성폭력을 사법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피해자가 크게 늘고 있지만, 이를 제대로 처리해야 할 수사기관의 인식 수준은 어디에 그치고 있는가. 실제 한국여성의전화 상담사례에 따르면 ‘남자친구가 합의 하에 성관계를 했다고 하는데 거짓 신고한 거 아니냐’, ‘폭행과 협박이 없었으니 강간이 아니다’라는 경찰의 잘못된 대응으로 고소 단계부터 가로막히는 경우가 다수 있었다. 또한, 검찰이 ‘가해자와 동거 기간이 길다’, ‘가해자와 수시로 성관계를 한 것처럼 보인다’라는 이유로 성폭력 사건을 불기소 처분한 사례도 있었다. 이처럼 본 사건뿐만 아니라, 수사기관이 친밀한 관계 내 성폭력에 가진 통념으로 법적 대응 절차를 좌절시키는 추가 피해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이같은 피해를 막을 수 있도록, 아내강간을 제대로 처벌하고 법 규정을 명문화하라고 2007년부터 한국 정부에 권고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성폭력 판단 기준을 ‘자유롭고 자발적인 동의 부재’로 수립하라고 권고해왔다. 한국여성의전화를 비롯한 국내 223개 여성·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하는 ‘강간죄’개정을위한연대회의에서는 성폭력의 판단 기준을 ‘폭행·협박’이 아닌 ‘동의 여부’로 바꾸는 개정 활동 등을 오랫동안 전개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입증책임을 피고인에게 전가시키고, 여성의 의지나 능력을 폄하할 여지가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비동의 강간죄 도입에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수사기관은 뼈저리게 반성하며 피해자에게서 다시 배워라. 이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성폭력과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에 대한 교육을 필수적으로 실시하고 수사 매뉴얼을 정비하라. 정부와 국회는 아내강간 처벌규정을 명문화하고 현실과 괴리된 강간죄 구성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개정하라. 어떠한 관계에서든 원치 않는 성관계는 강간임을 명확히 하여 여성폭력 피해자의 인권을 보장하라. 지난한 과정을 이어가고 있는 피해자에게 지지를 보내며, 본 사건에 대한 정의로운 판결을 촉구한다.

 

*관련 기사 : https://www.news1.kr/articles/5108745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3070306463040415

http://hotline.or.kr/index.php?mid=board_statement&category=10337&document_srl=77840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7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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