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001.jpg

 

성범죄 가해자에게 악용되는 국민참여재판, 이대로는 안 된다

- 작년 한 해 성범죄 국민참여재판, 무죄율 53%에 부쳐

 

성범죄 가해자에게 악용되는 국민참여재판, 이대로는 안 된다

- 작년 한 해 성범죄 국민참여재판, 무죄율 53%에 부쳐

 

지난 4월 23일 발표된 기사에 따르면 작년 한 해 국민참여재판으로 시행된 성범죄 사건의 무죄율은 53%에 달한다. 2008년부터 2020년까지 이 무죄율 수치는 평균 21.88%로 국민참여재판으로 시행된 다른 범죄 사건의 무죄율(상해 6.24%, 살인 1.68%)에 비해 3배에서 최대 10배 이상 높아 문제적인데, 최근 들어 이 수치가 더욱 증가한 것이다.

 

2022년 사법정책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국민참여재판에 성폭력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이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확인된다. 배심원의 평결과 판결의 결론이 불일치한 사건에서 배심원들이 무죄 평결의 사유로 든 내용은 다음과 같다. ‘피해자가 피해 즉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아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원래부터 친하게 지냈던 사이였기 때문에’, ‘피해자가 가해자를 만난 장소가 클럽이어서’, ‘피해자가 유흥업자 종사자여서’ 등이다. 이는 성폭력은 많은 경우 아는 사이에서 발생하며, 성폭력 직후 피해자는 여러 이유로 신고나 대처를 망설일 수 있으며, 성폭력의 주요 원인은 피해자의 옷차림이나 성적 이력, 직업 등이 아닌 피‧가해자 간 불균형한 권력관계임을 간과한 무지와 몰이해의 산물이다. 2022년 성인 35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 분석한 한 연구에 따르면 응답자의 성차별 의식, 강간 통념 수용도는 성범죄에 대한 유무죄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밝혀졌다.

 

영국에서는 이와 같은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성폭력 범죄와 관련된 잘못된 통념 등을 판사가 배심원단에게 사전에 설명해야 한다는 지침을 두고 있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캘리포니아주 역시 재판부가 배심원단에게 성폭력 사건의 특성을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은 국민참여재판을 도입한 지 15년이 지났지만, 배심원단 교육 등 성폭력 통념의 영향을 배제하기 위한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기실 제도적 장치가 부족한 문제만은 아니다. 이미 2012년에 법 개정을 통해 성폭력 피해자가 국민참여재판을 원치 않을 경우 이를 반영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보도에 따르면, 2016년에 대법원이 “성폭력 범죄 피해자나 법정대리인이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아니한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참여재판 배제 결정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라고 판시한 이후로 성범죄 국민참여재판의 신청이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당시 판결문 전체를 살펴보면, 피해자가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않는 구체적 사유와 피‧가해자 간 관계, 피해자의 상황, 기존의 피해자 보호 조치가 국민참여재판 진행에 따른 추가 피해 방지에 부족한지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는 점을 동시에 밝히고 있다. 피고인의 권리만을 고려할 것이 아니라, 피해자 또한 인권을 존중받으며 공정한 사법 절차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법률에도, 판례로도 규정되어 있는 내용을 법원은 도대체 어떤 잣대로 바라보고 있는가.

 

법원은 성폭력 사건의 특성을 제대로 살피고 성폭력 피해자의 국민참여재판에 관한 의사를 적극 반영하여 추가 피해를 방조하지 마라. 국회는 성범죄의 경우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할 수 없도록 하는 등 성폭력 피해자가 공정한 사법 절차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라. 국가는 인식과 제도의 미비한 틈을 노려 성폭력 가해자가 국민참여재판을 악용하려는 시도를 더는 허용하지 마라.

 

- 관련 기사: https://vo.la/yP8QS

- 당신과 함께하는 기억의 화요일 ‘화요논평’ 20230502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85 (화요논평) 신당역 '여성 살해' 사건 200일, 스토킹 처벌법 제정 2년 달라진 것은 없다 진해여성의전화 2023.05.09 0
184 (화요논평) 차별과 폭력 양산하는 정상가족주의 해체하라 – 생활동반자법 발의에 부쳐 진해여성의전화 2023.05.18 0
183 (화요논평) 성차별로 얼룩진 국회의원 후보자 공천 과정 - 정당은 이제라도 부적격한 후보에 대한 공천을 철회하고 성평등 국회를 만들기 위한 책무를 다하라 admin 2024.04.03 0
182 (화요논평) 과거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각 정당은 뼈아픈 자기반성에서부터 시작하라 진해여성의전화 2022.05.19 1
181 ( 화요논평) 스토킹 가해자는 처벌하지 않고 피해자 보호시설만 만들면 되나? 진해여성의전화 2022.12.29 1
180 (화요논평) 감호시설만으로 부족하다. 가정폭력 피해자의 안전을 위해 가해자 처벌 강화하라! 진해여성의전화 2023.01.04 1
179 (화요논평) JTBC는 조직문화 쇄신하고, 반복되는 성폭력을 멈춰라 진해여성의전화 2023.05.09 1
178 (화요논평) 우리는 여전히 힘을 잃지 않습니다 - 제20대 대통령 선거 결과에 부쳐 진해여성의전화 2022.03.21 2
177 2022년 6.1 전국동시지방선거 경남여성 기자회견문 진해여성의전화 2022.06.02 2
176 (화요논평) ‘엄마 행복 프로젝트’가 여성정책? - 지방자치단체, 제대로 된 성평등 정책이 필요하다! 진해여성의전화 2022.07.01 2
175 (화요논평) 국가는 더 이상 여성폭력 피해자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말라 - 스토킹처벌법 개정계획 발표에 부쳐 진해여성의전화 2022.10.05 2
174 (화요논평) 여성폭력을 여성폭력이라 부르지 않겠다는 정부,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다. 명백한 본질 호도다. 진해여성의전화 2022.12.07 2
173 (화요논평) 성희롱과 임금차별이 ‘청년의 노동권 보호’로 해결 가능하다고? - 고용노동부의 중소금융기관 기획감독 결과에 부쳐 진해여성의전화 2023.03.16 2
» (화요논평) 성범죄 가해자에게 악용되는 국민참여재판, 이대로는 안 된다 - 작년 한 해 성범죄 국민참여재판, 무죄율 53%에 부쳐 진해여성의전화 2023.05.09 2
171 (화요논평)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력한’ 성평등 정책 추진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진해여성의전화 2022.03.25 3
170 (화요논평) 여성가족부 폐지 추진 당장 중단하라 - 성평등 관점 없는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은 불가능하다. 진해여성의전화 2022.04.07 3
169 (화요논평) "국가가 죽였다"-신당역 여성살해 사건에 부쳐 admin 2022.09.21 3
168 (화요논평) "말” 뿐인 대책 말고 진정한 피해자 권리 보장 실현하라 - 스토킹처벌법 시행 1년에 부쳐 진해여성의전화 2022.10.28 3
167 (화요논평) 기존 통계의 나열로 그친 ‘첫’ 여성폭력통계 잘못된 정책생산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진해여성의전화 2023.01.11 3
166 (화요논평) 성폭력에 ‘성적 수치심’이 아니라 불쾌감을 느껴 무죄? admin 2023.05.30 3
SCROLL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