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워치 기능 강화보다 ‘가해자 워치’ 강화가 필요하다]
지난 21일, 부산의 한 거리에서 또 한 여성이 흉기에 찔려 무참히 살해당했다. 피해여성은 앞서 17일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하고 스마트워치(위치추적기)를 지급받았다. 사건 당일, 피해여성은 자신이 운영하는 주점에 가해자가 찾아오자 스마트워치를 통해 긴급신고 했으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 경찰은 집으로 먼저 출동했다가 주점으로 이동했고, 그 사이 여성은 가해자에 의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신변보호 담당 경찰관이 주점에 와서 피해여성의 신변을 확인하고 돌아간 지 2시간 만에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사건 현장의 위치를 제대로 잡지 못한 위치추적기의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자, 경찰은 다음 달부터 위치 표시 기능이 향상된 신형 스마트워치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능상의 한계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피해자가 가해자를 피해 숨어야 하는 이상, 가해자가 어느 때고 찾아올 수 있는 상황에 있는 이상 피해자는 결코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제아무리 스마트워치 기능을 강화한다 한들 사후대처 성격을 넘어서지 못하며,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기계의 위치추적 기능에 대한 논란만 무성한 가운데, 여성의 죽음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과 책임은 누구도 얘기하지 않고 있다. 위 사건 발생 전 가해 남성은 피해여성의 집을 여러 차례 찾아가 욕설하고 침입을 시도하며 여성을 지속적으로 위협한 바 있다. 이러한 스토킹 행위가 결국 살인으로 이어진 것이다. 현재 스토킹에 대한 처벌은 경범죄처벌법상 고작 8만원의 범칙금 부과에 불과하다. 주로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잘 알고 있는 친밀한 관계에 있는 가해자에 의해 스토킹이 발생하는 현실에서, 피해자에게 위치추적기 하나 쥐어주면서 하루 두 번 순찰하는 정도로 신변을 보호하겠다는 발상은 그야말로 미봉책에 불과했다. 피해여성은 위급상황 발생 시 구조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스마트워치를 찼을 것이며, 사건 당시 긴급신고 버튼을 눌렀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은 결국 구조되지 못했다.
만약 스토킹 행위에 대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범죄로 분명히 규정하여 피해자에 대한 접근을 제지하고 범죄행위를 수사·처벌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근거가 있었다면, 그럼으로써 피해자가 가해자의 위협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면, 이번 사건뿐만이 아닌 그동안 이어진 수많은 사건들의 피해자가 죽음의 문턱을 넘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애정 공세’ 정도로 사소하게 취급하고, 가해 행위를 분명하게 제재하지 않음으로써 여성들이 끔찍한 고통 속에서 삶을 빼앗기도록 방조한 것에 다름없다.
국가가 진정 피해자의 신변을 보호하고자 한다면 사건 발생에 앞서 피해자가 목숨을 위협받는 급박한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그 책무를 다하라. 스토킹범죄 발생 시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가해자에 대한 즉각적인 제지와 경고, 가해자 격리 및 범죄수사 등의 조치를 하도록 하고, 피해자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는 실질적인 피해자보호조치를 취하며, 스토킹범죄에 대해 형사처벌 원칙으로 분명히 처벌하는 내용의 스토킹범죄처벌법을 제정하라. 미국, 독일, 일본 등 다른 국가에서는 스토킹을 중범죄로 인식하고 별도의 스토킹 관련법을 두어 스토킹 행위를 규율하고 있는 만큼, 1999년 이후 발의와 폐기를 반복해 온 스토킹 관련법이 20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제정되어야 한다.
* 관련 기사 https://goo.gl/fizmMU
* 스토킹범죄 처벌법 제정촉구 서명하기 >> https://goo.gl/hfaHWG
* 당신과 함께하는 기억의 화요일 ‘화요논평’ 20170829